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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직관의 나날

[2011년 4월 2일 서울 VS 전북] 기사회생한 서울, 헤이젤 참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전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4. 4.



서울의 리그 첫승이 있은지도 3일이 지났다.
업데이트는 바로바로 해야 제맛이지만,
주5일 회사에 메인 직장인 신분으로는 쉽지가 않네.

아무튼 3일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다시금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지난 달 다섯 번의 축구관람으로 쇳소리가 났던 나의 목은
감격적인 리그 첫승, 그것도 3:1의 대승으로 어마어마하게 보상받았다.
오오렐레를 부르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전에
또다시 골이 들어가는 그 기분이란!!!
비록 어깨동무할 옆자리에는 냐냥과 여고생이 있을 뿐이었지만,
- 다음부터는 더 빨리 가서 꽃미남 옆자리를 선점해야겠어!!!
그래도 좋았다. 

비가 온다던 기상청의 예보는 여전히 기분좋게 틀려주시고,
- 방사능이 온다고 왜 말을 못해? 아니, 안해?!!!
전반전 사자후를 할 때부터 쩌렁쩌렁 울리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부상에서 복귀한 제파로프는 날아다녔고,
중원에서 플레이가 매끄럽게 이루어지자 공격진의 움직임도 좋아졌고,
데얀과 몰리나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 아디는 타자칠 필요도 없어. 적어봐야 손만 아프지. 늘 베스트니깐.
무려 한 달만에 보는 서울다운 모습이었다.


- 생명연장의 꿈을 이루신 관감독님,
그동안 우리가 리그 세 경기 진다고 당신을 까댔던 건 아닙니다.
챔스까지 본다면 2승 3패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는 전적이었죠.
하지만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경기내용이잖아요.
팀을 이렇게만 운영해준다면 진다고 한들 누가 뭐라고 할까요?
아직 당신에 대한 의심과 걱정과 우려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미우나 고우나 아직은 우리 감독님이시니 좀더 믿고 지켜보겠습니다.


그리고 장내 아나운서를 적극 활용한 새로운 응원가의 도입은
응원석 못지않은 E석의 열정적인 응원을 이끌어 내었다.
아직 응원석의 콜리더들과 호흡이 맞지는 않지만,
잘만 이끌어 간다면 전 좌석의 서포터즈화를 실현,
한국축구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생각에 흐뭇하면서도
원정응원석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 원정응원석의 전북 서포터즈는 앉아만 있고,
일부는 E석으로 들어가서 서포팅을 하는 걸까.
원정팀이 E석에서 저래도 되는 건가.

그 이유는 경기가 끝나고 인터넷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올시즌부터 14,000원으로 오른 원정석 티켓가격과
청소년 티켓도 없는 서울에 항의하는 의미였단다.
티켓가격 책정은 구단 마음이라지만 솔직히 좀 비싸긴 하다.
하지만 원정팀이 원정응원석이 아닌 E석에서 응원을 한다는 것은
'홈팀에 대한 도발'이라는 것을 떠나서도
결코 해서는 안되는 위험한 일이다.

원정팀을 홀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은 이해하지만,
홈팀과 원정팀이 같은 좌석에 앉는 것은 좀더 신중했어야 하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얌전하고 예의바른 축구문화가 정착되고 있어서
서포터즈 간의 충돌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만약 그 날 E석에 앉은 홈팀 팬들과
전북의 서포터즈 간에 다툼이라도 생겼었다면......


1985년 브뤼셀의 헤이젤 스타디움,
리비풀과 유벤투스는 유러피언컵 결승을 앞두고 있었다.
경기 전부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두 팀의 팬은 팬스를 사이에 두고 욕설을 하고 물건을 던졌다.

그러던 중 훌리건으로 악명높았던 리버풀 팬의 일부가
무기를 들고 팬스를 넘어가 유벤투스 팬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이를 피해서 달아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경기장의 오래된 벽이 무너져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의 징계로 리버풀은 유럽대항전 7년 출전 금지,
다른 잉글랜드 팀들도 5년간 출전 금지를 당하게 되었다.


과거 '헤이젤 참사'에서 보았듯이 
축구경기장은 언제나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우리의 축구문화 속에서 서로에 대한 배려만 있다면
유럽과 같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의 현명하지 못한 행동은
홈팀의 구역인 E석을 차지했다는 상징적인 의미에서도 문제가 되지만,
사람의 생명과 연관된 안전을 등한시 했다는 데서 더욱 문제가 된다.
좀더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