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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W/직관의 나날

[2011년 3월 20일 전남 VS 서울] 지금은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할 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21.




축구를 알기 전의 나는
'광양'하면 '광양매화축제'나 '광양불고기'를 먼저 떠올렸다.
2011년 3월 20일의 나는
'광양'하면 '광양전용구장'이 떠오른다.

아침 5시반에 일어나서 빗속을 헤치며
머나먼 광양까지 내려가
매화 한 송이 제대로 못 보고,
불고기 한 점 제대로 못 먹어도,
FC서울의 축구를 볼 수 있으니까 괜찮......
기는 개뿔!

감기로 골골대는 병든 육신으로
90분 동안 뛰고 노래하고 소리쳤건만
3:0이 뭐냐고!!!




하...
그래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부족한 잠, 감기와 싸우며 6시간을 힘들게 내려갔지만,
다행히도 새벽부터 내리던 비는 서서히 잦아들더니 멈췄다.

곧이어 선수단의 버스가 도착했고,
선수들을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연습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원정의 장점!



광양제철소 안에 있는 광양전용구장은
12,920석의 아담한 경기장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지어진 축구전용구장이란다.
그래서인지 100여 명의 서포터즈만으로도 응원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다른 경기장과 달리 구역별로 나눠져 있지 않아서
어느 좌석으로든 이동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S석(원정응원석) 앞에만 그물망이 쳐져 있다.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 설치해 놓은 것 같은데 기분이 과히 좋지는 않았다.
수호신은 물병이나 던지는 그런 개념없는 서포터즈가 아니라고.
이 그물망 때문에 스탠드 위쪽으로 올라가 서포팅을 해야 했다.



날씨 때문인지 관중이 적었지만,
경기가 시작되면서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부상 중이었던 지동원이 선발로 출전했지만,
그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은 듯 했다.
그리고 위너드래곤즈(전남 서포터즈)는 수호신보다 수가 적어서
원정이었지만 마치 홈구장과 같은 서포팅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흥겨운 분위기도 잠시...
김용대의 파울에 의한 패널티킥으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더니,
서울은 후반전에 들어서도 답답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전남은 후반 31분 이종호의 골에 이어
추가시간에 김영욱이 골을 넣으며,
3:0으로 홈에서 7년만에 서울을 이겼다.

솔직히 전남이 잘했다기 보다는 서울이 못했다.
FC서울은 좋게 말해서 두 가지가 문제였다.
공격과 수비. 

데얀은 고립됐고,
몰리나는 몸이 무거웠으며,
미드필드의 플레이는 보이지도 않았고,
패스정확도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아디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수비였다.
감독놀음이라는 축구에 전략과 전술이 없었다.

챔스리그에서는 2승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항저우전의 3:0 승리가 무색해졌다.
리그에서 겨우 3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1무2패의 결과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문제인 것이다.
지난해 챔피언, FC서울 축구의 색깔이 사라졌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밖에는.

열심히 뛴 선수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다.
어느 분의 말처럼 서포터즈와 선수의 관계는 부모자식과 같아서
선수는 서포터즈를 두고 팀을 떠날 수 있지만,
서포터즈는 선수를 버리고 팀을 떠날 수 없다.
아직도 여전히, 아니 더 열정적으로 FC서울을 지지한다.

하지만 감독은 다르다.
감독과 서포터즈의 관계는 교사와 부모 같아서
선수들이 바른 길로 갈 때는 감독에게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보내지만,
선수들이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해 잘못된 길로 간다면
당연히 감독을 바꿔 주어야 하지 않을까.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믿고 기다리다가
내 자식이 곡하고 장사지내는 흉내를 내고,
물건파는 놀이나 할 때까지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지금은 맹모삼천지교를 행할 때.


전남 원정 후,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몸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피로도, 그 패배도 모두가 관 때문인 것 같다.
이적선수와 부상선수로 선수단 구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이제 겨우 리그 3경기를 겨우 치룬 것도 알고 있고,
황보관 감독에 인간적으로 측은지심도 느껴진다.

하지만 FC서울을 사랑하는 서포터즈로서 나는 두렵다.
이것이 과연 일시적인 것일지,
아니면 이 선택이 팀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인지......
차범근에서 윤성효로,
호지슨에서 달글리쉬로 갈아탄 결과가 보여주듯이
FC서울도 결단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그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