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4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나는 국경을 넘어선 존재가 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니까 조선이라면 조선, 한국이라면 한국, 일본이라면 일본...
그러한 좁은, 작은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세계로...
다 힘을 합치고 서로 손을 합치면서 악수하면서 세계에 나서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그러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나같이 이러한 복잡한 존재. 세 나라에 공통으로 관련돼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그러한 역할을 널리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스포츠가 주는 감동, 인간 승리의 스토리에 쉽게 마음을 뺴앗기고 눈물을 흘리고 마는 울보지만, 정작 적극적으로 어떤 선수를 좋아한다거나 경기를 챙겨본다거나 하는 일은 잘 하지 않았다. 축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축구라면 거부 반응이 심했다. 국가주의, 민족주의 이런 이념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스포츠라는 생각. 한국과 일본에서 개최되었던 2002년 월드컵은 축제나 다름 없었고 놀기 좋아하는 성격에 한 번 즈음 그 응원 행렬에 섞여 즐거운 광기를 쏟아낼만도 했는데 '축구를 안 보다니, 애국자가 아니구나.'라고 누군가 한 말이 거슬려, 축구를 안 보고 매국노가 되어야 하는 거라면 차라리 매국노가 되겠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반발심이 들었었다. 나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이 나의 조국이긴 하지만 민족적인 성향은 동포애로 표현되기 보단 배타적일 때 더 힘을 발휘하는 것 같은데 축구가 그것을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아 싫었던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축구는 내 관심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2010년 우연히 보게된 월드컵 중계 방송, 주변에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서 들은 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을 이겨낸 축구 선수들의 사연을 들으며 그들의 삶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축구에 관련된 책을 한두 권 읽기 시작했꼬, 몇몇 선수와 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는 축구 초보의 첫 발을 내딛었다. 상암월드컵경기장에 가서 경기도 보면서 축구라는 것 자체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주말이라 여유롭게 뒹굴거리다 TV를 켰다. (멍하게 시간을 잡아 먹게 만드는 게 TV인지라 7년 전에 과감히 TV를 없애 버렸었는데 축구를 보려고 다시 장만했다.) 정대세 선수가 자신은 국경을 넘어선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인민 루니라고 불리는 선수. 그때까지만 해도 정대세 선수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그게 다였다. 재일교포인지도 몰랐었다. 그러나 그 말.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대해 알게 되자,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가 참 장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일동포 작가인 가네시로 가즈키. 재일동포로 살아가며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해야 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게 써내려 가고 있어 그리 심각하지 않게 오히려 재미있게 그의 책들을 읽곤 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많은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화 되었는데 그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GO>. 영화 속에서 재일교포인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廣い世界をみろ、そして自分で決めろ。
(히로이세카이오미로, 소시테지분데키메로)
넓은세계를 봐라, 그리고 스스로 결정해라.
國境線なんか俺が消してやるよ。
(콕교센난카오레가케시데야루요)
국경선따위는 내가 없애주마.
廣い世界をみるのだ
(히로이세카이오미루노다)
넓은 세상을 볼거야
브이를 지으며 별 거 아닌 듯 내뱉는 그 말이 멋져서 일본어도 힐 즐 모르면서 그 말은 몇 번이고 따라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말이 그저 커다란 세계로 나가아겠다는 꿈. 일반적으로 말하는 큰 물에 가서 놀겠다는 의미 정도의 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정대세 선수의 인터뷰를 보면서 그 말이 자이니치라고 불리는 재일동포에게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나는 부끄러워졌다. 단순히 국경, 국가, 민족이라는 의미에서 자신을 규정지으려고 하면 단순하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 재일동포의 삶. 그들은 그런 것 따위 문제가 되지 않는 넓은 세계가 정말로 간절한 이들이었고, 넓은 세계는 우리의 인식이 조금만 바뀌어도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일본 사회에서 자이니치임을 숨기며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재일교포이기에 당할 수밖에 없는 수모와 멸시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루어 당당해지려는 이들도 있다. 그들 중 정대세는 자신의 꿈을 빨리 편하게 이루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알면서도 어렵고 먼 길을 택했고 자신의 선택에 당당했다.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조국을 원망하거나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탓하지 않고 건강하고 바른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이 없기에 정대세 선수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정대세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축구'에 관한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국가가 흘러나올 때 울음을 터뜨린, 자이니치 출신의 북한 대표선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북한을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킨 인간 불도저,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팀 중 하나인 보훔으로 이적한 첫 J리그 선수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그의 존재가 우리에게 던져준 의미는 우리와는 무관한 듯 살아온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들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를 반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땅에서 약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 김치냄새 독하다. 조선 돌아가라. 그런 말을 계속 들으면서 신경을 안 쓴다. 한계를 만드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환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각오나 다짐, 노력이 중요한 거니까
정대세의 그런 마음이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 내 북한에 대한 정서를 생각한다면 북한 국가대표이자, 자이니치라는 그의 이력이 일본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일텐데, 정대세를 향한 사람들의 마음은 진심으로 그를 응원하고 진심으로 그의 진정성을 헤아리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 반짝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우리 선수에 대해 , 종이 위의 두 글자일 뿐인 한국이라는 국적이 조국이자 고향처럼 느낄 수 있도록 더 큰 응원과 관심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대세의 열정과 굳은 심지에 반한 나는 그가 자신의 꿈인 프리미어 리그 진출을 이루길 간절히 바라본다. 재일동포들에게 조선, 한국으로 나눠진 조국이 아니라 얼른 하나된 조국으로 조금이나마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해하는 일이 줄어드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기억력은 나쁘지만, 어학을 잘 하는 사람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하기에 4개 국어. 곧 5개 국어를 열심히 공부하는 청년 정대세. 축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이 에너지 넘치는 청년을 두고 색깔 논조로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이 사라지길 덧붙여 바란다.
(+) 마지막으로 덧붙이는, 이름하여 사심 캡쳐
뭐 물론 정대세의 넓은 어깨와 등판에 반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쓴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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